디자인 스토리
사회와 타이포그라피
“타이포그래피는 그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며 정신적 진보와 민족의 발전에 대해 말해주는 증명서와 같다.” 이 말은 최초의 산업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독일인 피터 베렌스가 1800년대에 했던 말입니다. 이 문장을 보면 무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피터 베렌스가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에 관해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이포그래피는 그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며 정신적 진보와 민족의 발전에 대해 말해주는 증명서와 같다.” 이 말은 최초의 산업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독일인 피터 베렌스가 1800년대에 했던 말입니다. 이 문장을 보면 무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피터 베렌스가 타이포그래피의 본질에 관해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강의 주제인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내용을 준비하면서 피터베렌스가 간파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여러분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이 말을 가장 잘 표현하는 그래픽이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항상 지니고 다니고, 하루라도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인 우리는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이런 그래픽이 있는지 자세하게 뜯어보거나 의문을 가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는 1달러짜리 지폐를 놓고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파 앤드 어웨이’라는 미국 이민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장면 중에 누구든 달려가서 깃발을 꽂으면 자기 땅이 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때는 미국을 개척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빈 땅으로 이주 시켜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앨리스 아일랜드에 내린 이민자들은 땅을 찾아 이동했고, 그들의 문화와 의복, 제품, 인쇄물이 모두 따라갔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발견했겠지만 니콜 키드먼이 톰 크루즈에게 보여주는 종이는 랜드썬 광고지입니다.(그림4) 니콜 키드먼이 이 광고전단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지고 간 것입니다.
서부 개척이 러시를 이루고, 금으로 거부가 됐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서쪽에서 전해져 왔습니다. 그림5)은 골드러시가 붐을 이루던 시대의 포스터입니다. 이 포스터에 쓰인 글꼴은 이집션 스타일화 된 슬랩세리프 서체입니다. 세리프가 뒤에 각처럼 처져 있는 각세리프입니다. 그림6)는 당시 ‘빌리 더 키드’라는 희대의 살인범 수배 포스터입니다. 서부 영화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슬랩세리프 이집션 스타일, 펫페이스가 보이시죠? 그림8)도 ‘와일드 번치’라는 도둑에게 현상금을 건 수배 포스터인데, 여기에도 펫페이스가 있습니다.
미국에 ‘웰스 파고’라는 세계적인 은행이 있습니다. 웰스와 파고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광산업을 하다가 함께 은행을 차렸습니다. 그림8)은 당시에 찍은 웰스파고 은행 지점입니다. 간판 서체가 보입니다. 이 서체가 유가증권과 금고에도 쓰인 것으로 보아, 이들이 시각 아이덴티티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9)는 현재 ‘웰스 파고’ 간판입니다.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회사 아이덴티티를 쉽게 바꾸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들은 색상 변화는 주어도 글꼴은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글꼴에서 ‘웰스 파고’는 크고 단단한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연상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 바꾸지 않습니다.
여러분 혹시 옛날 간판집 아십니까? 천을 펼쳐놓고 넓적 붓으로 굴림체 같은 서체를 스케치도 없이 한 번에 써내는 그런 분들이 하던 간판집 말입니다. 18세기 유럽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림13)의 가우디 올드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이 타입은 18세기 금속활자로 만든 운문형 서체입니다. 싸인페인터들은 이 서체 타입을 그대로 크기만 확대해서 쓰면 어색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타입은 10포인트 크기로 인쇄 했을 때, 잉크가 거친 종이에 살짝 번져 채워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서체입니다. 크게 확대해서 아웃라인이 명확하게 나오면 별로 매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싸인페이터들은 그대로 그리지 않고 그림14)처럼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슬랩셰리프를 역사가들은 18세기 싸인페인터들이 고안해 낸 타입페이스 형식이라고 말합니다. 많이 쓰다 보니까 더 각진 형태로 발전해서 그림15)처럼 셰리프가 변했습니다. 이것을 이집션 스타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스타일은 스퀘어셰리프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이집션스타일로 더 많이 통용됩니다.
이집션이라는 말이 붙게 된 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관련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영국과 인도와의 교류를 차단하려고 했습니다. 영국에서 인도로 가려면 지중해 해협을 지나 육로를 거쳐 인도양으로 가는 길이 가장 빠릅니다. 나폴레옹은 이 경로를 완전히 봉쇄하려고 중간 지점에 있는 이집트-시리아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이집트-시리아를 정복하고 나서 나폴레옹 군대는 이집트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유물들을 프랑스로 들여왔습니다. 그렇게 가져온 이집트 물건들이 프랑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집트 물건이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각종 집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이집트 스타일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적대관계에 있는 영국에서도 이집트 바람이 불 정도로 크게 유행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집트 스타일을 지칭하는 말로 이집션이라는 말이 생겼고, 싸인페인터들은 새로 만든 서체에 걸맞는 이름을 고민하다가 유행에 따라 이집션이라는 이름을 서체에 붙였습니다. 이집트와는 기원이나 형태, 역사 등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이 순전히 상업적인 이유에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처럼 싸인페인팅에서 만든 서체를 서체회사들이 가져오면서 펫페이스체가 탄생했습니다. 그림16)의 펫페이스 서체는 10포인트로 쓰면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크게 확대하면 가느다란 선과 굵은 선이 대비되어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글자가 됩니다. 그리고 세리프는 아주 얇아 졌습니다. 당시의 글꼴들은 중구난방 장식적인 글꼴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글자 안에 무늬를 넣기도 하고 삼차원 입체효과까지 넣은 것도 있습니다. 그림17)은 서커스서체인데 이집션 스타일이 과하게 발전하여 이렇게까지 변했습니다. 그런데 화려하고 눈에도 잘 띄어 서커스단 포스터에 적당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서체를 아직도 서커스 서체라고 합니다.
책을 만드는 활자판은 주로 금속판을 사용했습니다. 금속으로 서체를 만드는 것이 힘은 들지만, 나무는 결 때문에 작은 서체를 새기기 어려웠습니다. 금속 주조로 내구성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활자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미국의 다리우스 웰스라는 활자 주조가는 납합금으로 주조를 하다가 갑자기 큰 병을 앓았습니다. 납합금으로 이루어진 금속활자는 A~Z, 0~9까지 있으며, 폰트 사이즈별로 6, 8, 10, 12, 14, 16, 24, 36, 72pt까지 구비되는 하나의 폰트 세트입니다. 72포인트 이상은 만들지 못하는데다가 병이 나기까지 하자, 다리우스는 나무로 활자를 깎아 보았습니다. 나무로 만드니 가벼웠습니다. 이때부터 당시 유행하던 상업적인 대형 서체들을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목각활자인 우든 타입페이스가 생겨났고, 싸인페인터에게 의존하지 않고 목각활자로 상업적인 포스터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든타입페이스가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로 쉽게 활자를 만들면서 온갖 장식을 한 서체가 나오게 되고, 이 때 윌리엄 모리스가 이러 상황을 개탄하며 수공예 가치를 부흥해야 하며 노동의 즐거움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술공예운동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타이포그래피와 사회
글꼴 하나를 가지고 우리는 서양의 그래픽 디자인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별 관심 없이 쓰고 있는 글꼴에 당대의 역사와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달러에 이러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미국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글꼴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의 마음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 세계 통화로서 세계 사람들에게도 신뢰의 서체로 각인될 것입니다. 1800년대 말 싸인페인팅 글꼴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이 오늘날 신뢰의 상징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타이포그래피는 피터 베렌스가 했던 말 “타이포그래피는 그 시대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며 정신적 진보와 민족 발전에 대해 말해주는 증명서”와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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